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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빨리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라  

칼럼 2016.11.24 05:19 Posted by 사랑 태평짱

국회는 빨리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라

 

  정국이 한없이 꼬여 있다.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여야 간의 대결이 심상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당내 파벌간의 이견도 상당하다. 주말마다 범국민적인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 탄핵으로 방향을 잡았다. 앞으로 최소한 반 년 정도는 쓰나미 같은 정치파동이 계속되고, 정부행정은 표류 내지는 마비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챙기겠다고 권한을 고집한다 해도 이미 리더십이 무너졌고,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권한이 중단된다. 혼란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대통령이 풀어가는 것은 어려워졌다. 국회가 풀어야 한다.

  
얼마 전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였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추천하는 국무총리를 임명하겠고 총리에게 내각의 통할권을 부여하겠다고 국회의장에게 약속하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내치에 전권을 갖는 책임총리이며, 이는 사실상 대통령의 2선 후퇴로 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야당은 거부하였으나, 이제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은 과거의 잘못을 없는 것으로 하는 조건으로 이를 제안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평상의 리더십으로는 통치가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제한된 권한만을 행사하겠다고 타협안을 낸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야당이 정해준 총리에게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양도하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맞지 않다.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은 총리를 경질하겠다고 국민에게 공표하였다. 국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해달라고 약속을 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해야 한다. 이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선언이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 요구가 이제라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회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

  
먼저 총리 후보자를 야당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찾으려 생각하지 말고, 그야말로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한 사람을 추천해야 한다. 대통령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양해를 해야 절차가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리를 할 사람은 중립적인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총리 후보자는 가능하면 각 부처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일단 총리가 임명되면, 국회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회가 책임총리를 정했다 하여 행정부를 접수한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회의 배려와 자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히려 국회 출석도 예외적으로 하도록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중립성의 확보가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책임총리제가 헌법의 규정상 곤란하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는 지나친 형식론이다. 먼저 국회에서 총리로 추천하는 사람을 임명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헌법에 어긋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임명된 후에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이양하는 것이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군림만 하고 총리에게 실무적으로 많은 권한을 양도하겠다는 것으로 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최종 절차는 법대로 대통령까지 거치도록 하되 실질적 결정은 책임총리가 하도록 하고, 대통령의 관여는 형식적이 되도록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대통령이 국민과 국회에 약속을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당분간 운영해 보면, 소위 2원집정 제도라든가 책임총리 제도의 실질적 경험을 하게 되어 헌법 개정 시에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은 지금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나 탄핵을 원하고 있다. 조기 퇴진은 대통령이 원하지 않고, 탄핵소추는 장기간이 소요되어 정국의 혼란과 경제상황이 너무나 걱정된다. 현재 통치력을 잃은 대통령의 권한을 조기에 제한하면서도 정국의 안정을 빨리 취할 수 있는 길은 책임총리를 임명하는 길이다. 그것이 정국과 경제안정에도 절대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책임총리의 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와 여야 의원들의 훌륭한 정치력을 기대한다. 국가를 더 이상 이렇게 혼란 상태에 두어서는 안 된다.

  
이번 최순실게이트는 권력남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국회도 권력남용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 우리 국회는 무소불위의 거대공룡이면서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국회는 정치적 이해만을 따지면서 혼란을 부채질하지 말고, 행정부를 뒷받침해서 내우외환의 국가적 위기를 잘 극복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책임총리 문제는 대통령의 퇴진 문제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명예혁명이 된다. 조속히 책임총리가 출범할 수 있도록 국회가 행동해 주기를 바란다. 


(선사연,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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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기 풍조, 언론이 바로잡아야

칼럼 2016.11.24 05:17 Posted by 사랑 태평짱

떼쓰기 풍조, 언론이 바로잡아야

 

  어린아이들은 사소한 이유로 떼를 쓰는 경우가 있다. 대개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거나 안 해줄 경우, 또는 약을 먹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할 경우, 이런 일이 일어난다. 칭얼대고, 소리를 지르다가 악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다. 아이들이 그렇게 떼를 쓰는 것은 아직 뇌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감정조절 기능이 약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자라면서 뇌의 전전두엽과 전두엽이 발달하게 되면, 떼쓰는 것도 줄어들고 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떼를 쓸 때, 부모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들어주기 시작하면, 떼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아이를 망칠 수 있다. 떼를 쓸 때에는 오히려 들어주지 말고, 차분하게 말할 때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좋다. 철없는 아이들이 떼를 쓸 때 부모는 적정한 수준에서 아이에게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바르게 커나갈 수 있고,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고 울며 떼를 쓰는 모습을 간혹 본다. 이 때 대개 부모들이 쩔쩔매고 일을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부모가 떼를 쓰는 아이를 잘 다스려서 어릴 적부터 떼쓰기 보다는 바른 의사 표시로 얻을 것을 얻고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 시키며 자라게 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단호한 부모의 의지와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내에서도 도를 넘어 떼를 쓰고 말썽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그것이 흔히 잘 받아들여지는 가능성과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기적이어서 대개 자기네가 주장하는 목적을 얻어내는 데만 온 신경을 쏟는다. 마치 떼를 쓰는 아이들과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고 파괴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몸까지도 내던진다. 우리 사회는 정이 앞서는 사회이다. 적당히 받아주고, 적당히 덮어주는 바람에 눈물이 쏙 나게 야단을 맞아야 할 떼쓰기가 이득을 취한다.

  요즈음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떼쓰기 식 투쟁이 많아졌다. 예 컨데 우리 지역의 쓰레기처리장은 꼭 필요하지만, 우리 근처에 설치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국가안보는 꼭 필요하지만, 우리 근처에 군 시설은 절대 안 된다. 기업은 적자가 나더라도 기업의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을 강행한다. 공기업의 경영효율화가 시급함을 알아도 노조는 성과급 도입을 반대한다. 이렇게 개인이익과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친다. 무엇이든지 강하게 떼를 쓰면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법위에 떼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떼쓰기가 사회의 흐름이 되었고, 국회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우리 국회 의사당에서는 국회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이 잦아졌다. 말하자면 자기네끼리 싸우다가 결판이 안 나서 한 쪽이 힘으로 몰아붙이면 진 쪽에서는 억울하다고 떼를 쓴다. 어디에 이런 국회가 있을까? 지도자들이 행동을 할 때에는 분명한 목적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더욱 그렇다. 편 갈라서 떼쓰기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 배려와 존중으로 협상을 통해 전체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떼를 쓰는 아이들이 아직 자라지 못해서 그런 것처럼, 떼를 쓰는 행위가 잘 통용되는 사회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이다. 사회가 잘잘못을 제대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떼쓰는 어리광이 통하지 못할 것이다. 말썽꾼들의 신뢰와 평판이 깎이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고, 사회의 싸늘한 비난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게 사회가 징벌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통제이고 사회교육이다.

  결국 ‘불합리한 떼쓰기’가 통하는 책임은 사회에 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사회적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그 중에서도 이를 부추겨온 언론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국회파행에서도 관련자들이 반성보다는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는 식의 평가를 하는 분위기를 보며 참으로 실망이 많다. 이것은 주로 언론의 양비론과 양시론에서 비롯된 원인이 크다고 본다. 언론이 중심을 잡아 시시비비를 분명히 해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분명한 ‘가치’와 단호한 윤리적 ‘정신’을 세워야 한다. 이에 반하는 떼쓰기 어리광에 대하여 언론이 철저하게 응징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떼쓰기 문화를 바로잡아야 우리가 성숙한 사회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선사연, 2016.10.19)


    


공무원의 정의감

칼럼 2016.11.24 05:15 Posted by 사랑 태평짱

공무원의 정의감

 

2016.11.23

 

  최근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최순실 게이트’는 공무원 사회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국기 문란 사건이라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재벌기업에 기부금을 요구해 거뒀고, 민간기업 인사와 수주에 개입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국가대표 선발 및 체육단체 운영 등과 관련해 직권을 남용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중요 문서를 바깥에 유출하고, 외부인을 청와대에 무단출입시켰다. 모두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일했다고 말할 것이다. 대통령도 선의로 국민을 생각하며 이런 일들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공무원의 더 큰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자기를 선임한 고객을 위해 변론한다. 동일한 민사사건에서도 자기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그편이 되어 모든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심지어 그는 의뢰인이 살인자이거나 도둑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편이 되어 그 범죄가 얼마나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는지를 변호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법률의 허점이 있다면 이를 비집고 들어가 악인이라도 구제해야 한다. 이는 변호를 맡은 자의 당연한 의무이고, 직업상의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측면에서 변호사는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변호사들은 법률관계에서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복구시켜 주고, 죄인이라 하더라도 죄를 지은 만큼만 책임을 지고 더이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권리를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억울함이 없도록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지 죄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아니다. 변호사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 틀 속에서 한쪽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훌륭한 변호사는 사회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에서 성과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는 사이 결과만 잘 나오면 그만인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기기만을 생각하는 변호사가 된 것이다. 실력 있는 변호사일수록 오직 철저하게 이길 것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처럼, 원칙이고 정의이고, 철학이고 윤리 같은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옳고 그름에 무딘 나라가 됐다. 최근에는 드디어 ‘순수의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10억원을 얻는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의 경우에도 성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의가 더 중요하다. 공무원은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고, 상사의 명에 복종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에 대해서는 친절하고 공정해야 한다.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엄수하고, 청렴해야 하고, 품위를 유지할 의무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임용 때 하는 선서에 나타나 있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바로 이것이 공무원의 기본 의무를 나타낸다.

 

  헌법은 제7조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공무원은 법률상 상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최종적으로는 국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헌법이 요구하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은 전체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늘 전체 국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나라는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타파하는 가치를 추구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과 법령의 준수, 전체 국민에 대한 책임이 공무원의 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공무원의 윤리를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의 뜻과 지시를 이행하느라 충실하게 땀만 흘렸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을 욕되게 하고 자신의 명예도 잃게 되었다. 국가에도 큰 부담을 지웠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시라 하더라도 정의와 법령에 어긋나면 바르게 건의하여 실천하는 것이 공무원의 의무이다. 지금보다 훨씬 여건이 좋지 않았던 왕조시대에도 관료들은 목숨을 걸고 옳고 그름을 진언하였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 일을 했다 하여 책임이 절대 가벼워질 수 없다. 공무원의 정의감이 공무원의 가장 큰 의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서울신문-사설.오피니언-수요 에세이] 공무원의 정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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