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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런두런 이야기

[중앙SUNDAY 12월20일] '농협개혁' 인터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문제로 국회가 전쟁터로 변했던 18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장태평(59·사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만났다. 올해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서 쌀 직불금 문제까지 굵직한 현안과 씨름해야 했다. 요즘은 농협 개혁이 최대 현안이다. 중앙SUNDAY는 지난주 농협 개혁 기사(12월 14일자 1, 4면)를 게재한 데 이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 농협 개혁의 핵심은 뭔가.
“첫째 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다. 농협은 어디까지나 농민의 조직이니까 농민이 대표를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전문성이 없는 대표가 경영 전반에 나서는 것은 문제다. 선거제도 때문에 농협중앙회장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 이사회 중심으로 회장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지금도 회장은 비상임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결재하지 말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말라는 게 본뜻이었는데 그렇게 안 됐다. 특히 정대근 전임 회장 시절, 비상임이면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권력을 남용했다.”

- 2004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시절에 농협 회장을 비상임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당시 농협법을 개정해 회장을 비상임으로 만들고 사업부문별 대표이사 중심의 책임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결국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그때는 잘 몰라서 (개혁을) 했다. 난 일만 생각했지, 농협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세력관계나 국회에 가면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국회 공청회에 갔더니 나만 빼고 다들 농협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농민단체도 성명만 발표했지 실질적으로 도와주진 않았다. 농민단체는 맘에 안 드는 항목이 있으면 그것만 반대하고 전체적으로 문제를 보려 하지 않았다.”

- 당시 정대근 전 회장이 ‘농업인의 날’ 행사에서 세게 반발했다고 들었다.
“기자들도 참석한 행사였는데, 내가 좀 당했다(웃음). 기념식 마치고 점심 자리로 이동할 때 마주쳤는데, 내게 욕을 했다. 나는 너무 순간적으로 당해 (대응하지 못 하고) 멍한 상태로 있었다. 당시 나는 ‘농업인의 날’ 행사를 맡은 담당 국장이었다. 그날 행사에는 농림부 장관과 농업 관련 단체장이 많이 참석했다.”

이후 이 사건은 농림부와 농협 주변에서 많이 회자됐다. 농림부 담당 국장을 이렇게 대할 정도로 당시 농협 회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정대근 당시 회장은 농림부에서 열리는 농업 관련 단체장 간담회에도 여간해선 참석하지 않고 농협 임원을 대신 내보내곤 했다고 한다.

- 2004년 법 개정 때 그 정도로 외로웠나.

“진짜 그랬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다 농협 편을 들었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 쫓아다니면서 설명하느라 참 힘들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농협개혁위원회에서 개혁안이 나오면 농협을 설득하겠다. 지도적 역할을 하는 조합장들이 협조해 줘야 한다. 일시적 사심(私心)만 버리면 우리 농협이 진짜 잘 될 수 있다.” 정부는 9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농협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농협 개혁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 지역조합도 문제인데.
“그게 둘째 맥이다. 지역조합을 통폐합해 몸집을 키워야 한다. 현재 전체 단위조합(지역조합+품목조합) 1189개 가운데 45%가 읍·면 단위 조직이다. 농협중앙회의 무이자 자금 지원을 빼면 단위조합 가운데 500개 정도가 수익을 못 내고 있다. 금융 상황이 요즘처럼 나쁘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사업도 단위조합당 300억원은 취급해야 수지가 맞는데, 지금은 50억원 수준이다. 지역조합을 군 단위로 통폐합해야 한다. 당장 못 가더라도 단계적으로 그렇게 가야 한다.”

- 조합 수를 어느 정도로 줄이면 되나.
“일본 농협은 단위조합이 550개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도 200개 정도로 줄여야 단위조합이 수익을 낼 수 있다.”

- 지역조합의 규모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왜 이렇게 힘든가.
“조합장 권한이 너무 강해서다. 중앙회장과 마찬가지로 조합장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줘야 한다. 봉급도 너무 높다. 물론 시중은행보다는 보수가 낮지만 조합장 연봉이 7000만~8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도 받는다. 시중은행 지점장과 비슷하게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쌀 농사를 3만 평 지으면 6000만원 번다. 그러니 물불 안 가리고 조합장을 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장 장관은 개혁안을 마련 중인 농협개혁위원회를 감안해 구체적 언급은 피했지만 단위조합장 선거도 간선제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번 개혁작업은 잘 될 것 같나.
“가장 좋은 개혁은 농협 스스로 하는 것이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되는 것이지, 외부에서 깨면 그냥 달걀로 죽는 거다. 농협·수협도 과보호 아래 아늑하게 살던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협개혁위에서 나오는 안은 제3자가 여러 가지 상황을 판단해 내놓는 것이다. 농림부도 그 안을 그대로 반영할 것이다. 농협도 그대로 받아줬으면 한다.”

- 스스로 못하고 설득해도 안 먹히면 어떻게 하나. 어떤 채찍과 당근이 있나.
“외부적인 힘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이미 눈에 띄게 적자 상태인 조합 200~300개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중앙회 지원금이 끊어지면 바로 적자로 돌아선다. 통합하면 재정 지원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정대근 전 회장이 ‘농림부한테 볼펜 한 자루도 지원받은 것 없다’고 말하곤 했지만 농협은 정부 정책자금 25조원 정도를 집행한다. 시·군 금고나 정부 금고 등 안정적 수신도 30여조원에 달한다. 다 합하면 56조~57조원에 달하는 이런 돈이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 아닌가. 아무튼 몇 가지 확실한 채찍과 당근이 있다.”

- 정확한 계약관계 없이 농협을 정책수단으로 쓴다든지, 퇴직 관료들이 농협에서 일한다든지, 농협 개혁과 관련해 농림부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맞다. 농협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고칠 것은 고치겠다. 농협이 정책자금을 운용할 때 들어가는 정당한 코스트는 지불하고, 미리 집행하고 나중에 보전해 준다든가 하는 것들은 앞으로 합리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농민 지원정책도 손봐야 한다. 어떤 농업 지원제도는 일시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저해하는 것도 있다. 마약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장은 좋지만 끊으려면 힘든 것들이다. 앞으로 그런 지원제도는 없애겠다.”

-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마약’인가.
“농민에게 그냥 주는 보조금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비료 값이 오르면 인상 폭의 80%를 정부와 농협이 지원해 준다. 이런 지원제도는 안 좋다. 화학비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화학비료 값이 올랐다고 지원해 주면 되겠나. 올해는 해 줬고, 내년 예산에도 반영했다. 이건 정치적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 하지만 내년이 끝이다. 이런 것을 찾아내 단계적으로 고치겠다.”

- 올 8월 장관 취임사에서 ‘농림부의 주주는 농어민이고, 고객은 국민과 소비자’라고 했다. 모든 사업을 주주인 농어민 입장에서 집행하겠다고 했는데, 고객과 이익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객을 무시한 회사는 생존할 수 없다. 주주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더 중요하다.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이지만 이제 우리 농민도 시장지향형 생산자가 돼야 한다. 시장이 원하는, 소비자가 원하는 생산을 해야 한다. 품질과 안전이 그래서 중요하다. 주주 없이 회사가 존립할 수 없으니 주주도 중요하지만 주주가 생산했다고 품질과 안전 문제를 대충 넘길 수는 없다.”

- 주주들이 주총에서 힘을 모아 최고경영자(CEO)를 바꾸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웃으며) 고객을 위하는 게 중장기적으로도 결국 주주를 위하는 길임을 설득하겠다. 우리도 사회 전체의 일원이다. 독립부대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일부 있다.”

- 수협중앙회는 2001년에 공적자금 1조1581억원을 지원받았지만 여전히 힘들다. 완도군 수협 등 7개 수협은 부실이 커 파산이 우려되고 있다. 수협 구조조정을 주주와 고객이라는 구도에서 보면 국익과 어민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데.
“수산업 분야는 농업보다 더 어렵다. 어민을 위해 뭔가 부담할 각오는 서 있다. 문제는 수협 간부와 조합 운영진이다. 아직도 반성이 부족하다. 공적자금을 받았으면 잘못을 반성하고 자구노력을 했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있어야 정부도 지원하고 개선책을 낼 수 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수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1월 말까지 개혁안을 내겠다.”

-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는 큰 그림을 보면서 논쟁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농협 개혁, 잘 되겠나.
“옛날에 어떤 분이 나 보고 ‘독일병정’이라고 하더라. 지금까지 한번 물면 놓치지 않고 해 왔다. 농협 개혁은 농협이 지고 정부가 이기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농협·농민·정부 모두 윈-윈하자는 프로젝트다. 이런 진정(眞情)이 전달되면 될 수 있다고 본다. 농민이 주인이 되고 농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일이니까 꼭 된다고 본다.”


배석했던 농림부 정황근 대변인은 장관 인터뷰 뒤 이런 말을 했다. “농협 개혁은 현재 우리 부처 최대의 현안이며, 부처와 농업의 명운이 달려 있다. 이번에 못 하면 망하는 것이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농협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고, 국민적 관심도 높아 이번엔 잘 될 것 같다.”

취재 : 서경호<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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