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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21 생산성에 관하여
  2. 2018.09.21 원리와 원칙
  3. 2018.08.23 자기책임의 인식이 미래를 연다

생산성에 관하여

칼럼 2018.09.21 16:15 Posted by 사랑 태평짱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하면서 13억 명 국민의 식량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다. 개혁개방을 제대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먹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정부는 농업혁신을 위해 기존 집단농장을 더욱 강력히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리고 산비탈을 개간하고, 간척지를 조성하는 농지조성사업은 물론, 농기계와 비료 등 농업자재도 늘리고, 농업 신기술을 확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은 너무나 운이 좋았다. 이런 어떤 것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 식량증산을 4~5년 만에 40%이상을 증산하는 방법을 찾았으니 말이다.
중국도 소련 등 모든 공산국가들이 운영하는 협동농장인 ‘인민공사’를 운영했다. 농장은 국가소유이고, 농민들의 생산량은 모두 인민공사의 소유였다. 농민들은 배급으로 생활했다. 그러니 농민들은 아무리 목표량이 제시되고 온갖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더라도 열심히 일할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농자재 등 자원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1978년 안휘성의 농민들 18명이 위험한 모험을 시도했다. 18농가가 인민공사 전체 목표를 각자 분담하여 개별적으로 생산하고, 농가별 생산량에서 공사 목표량을 납부한 다음, 나머지는 각자 소유하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 이런 행위는 불법이어서 한 농가가 발각돼 처벌을 받게 되면, 다른 농가가 그 가족을 책임지도록 대비책도 마련했다. 그런 결과 이들은 첫해에 5배의 생산증가를 달성했다고 한다. 이들은 곧 들통이 나서 문제가 됐다. 그러나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그 진가를 파악하고, 처벌이 아니라 모범사례로 받아 들였다. 중국공산당은 서슴없이 1982년 이 방식을 농가책임제라는 정책으로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이후 중국의 농업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경지면적은 오히려 줄어들고, 농기계 등 변화도 미미하고, 다른 특별한 제도적 변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농업 생산성의 혁신방식이 중국 개혁개방의 초기단계에서 강력한 선순환 추진력을 제공했다. 식량자급의 안정 기반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식 시장경제 방식으로 추진하는 개혁개방에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었다.
생산성이란 생산에 투입되는 여러 요소들의 투입량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생산량의 비율을 말한다. 생산성은 투입요소나 기준에 따라 다양하다. 그 중 노동생산성이란 생산에 투입된 단위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의 양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상품을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10개를 만드는데, 어떤 사람은 15개를 만들 수 있다. 이럴 때 15개를 만드는 사람은 10개를 만드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다. 즉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산성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업이나 산업마다 다르다. 국가별로도 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있고, 생산성이 낮은 나라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일이 능숙해지면 생산성이 오르게 된다. 더 배우고, 장비가 좋아지고, 방식이 혁신되면, 생산성이 훨씬 더 향상된다. 생산성은 결국 더 좋은 상품을 만들게 하고, 더 값싼 상품을 만들게 한다. 생산성은 곧 경쟁력이다. 그래서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직원 교육, 기술자 스카우트, 첨단시설 확보, 공정과 경영혁신 등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은 참으로 많다. 이런 모든 것이 응집되어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기업의 경쟁력이 모여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요인 중에 국가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 중국의 농업생산성을 올린 사례를 보라. 관련 상황에 큰 변화 없이 제도만을 바꾸었는데도 커다란 생산성 증가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내가 노력하면 내게 그 성과가 온다는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은 땀 흘려야겠다는 열망을 분출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공산주의국가들은 국가계획 방식에서 자유 시장 방식으로 국가제도를 혁신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개인의 욕망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가슴 속에 일어나는 열망보다 더 강한 인센티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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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와 원칙

칼럼 2018.09.21 16:11 Posted by 사랑 태평짱
아이들이 싸우면, 엄마는 무조건 야단을 친다. 동생에겐 “형 말 잘 들어야지.”하고, 형에겐 “동생을 늘 구박만 하냐. 이웃 집 애들은 서로 잘 위해 주더라.” 한다. 그런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형은 엄마에게 대든다. “저 애가 잘못 했는데, 왜 엄마는 늘 동생편만 들어요?” 심지어는 “왜 엄마는 나만 미워해요?” 한다. 옆방에 있던 아빠가 개입한다. “아니 이 녀석이!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엄마한테도 화살을 돌린다. “애들을 어떻게 교육하길래 맨날 이렇게 싸워?”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엄마도 없다. “아니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이제 애들 싸움은 부부싸움으로 확전된다. 이런 싸움의 사례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본다. 동생, 형, 엄마,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당시의 상황만이 원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이미 간직하고 있던 감정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형은 동생이 늘 자기를 무시하고, 형이 생각하는 규칙을 어기면서 행동하는 동생에게 평소 불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때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이유다. 동생의 마음속에도 평소 형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동생도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기대의 기준들을 갖고 있다. 그 기준들은 원칙과 같은 것이다. 상대가 이 원칙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때, 불만이 쌓이고 어느 단계에서 화를 내게 된다. ‘화’라는 분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으나, 자기에 대한 모멸이나 좌절을 느낄 때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런 감정의 발로가 상대적으로 자신을 밝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왜냐면, 원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도 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 자연의 원리나 세상사의 원리와 같다. 원리는 근본이 되는 이치다. 이치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을 뜻한다. 사물과 존재의 근거, 사유와 인식의 근거, 행위와 규범의 근거가 되는 이치다. 일은 결국 이 원리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원리는 자연적인 것이고, 종교에서는 신의 영역이라 하겠다. 우리가 이와 유사하게 쓰는 말에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원칙은 현실에서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말한다. 원칙은 이 글에서는 원리와 더 명확히 구별하기 위하여 현실이나 이론체계에서 ‘사람’이 정하는 것으로 한다.
형의 감정은 동생은 이래야 한다는 자신의 일방적 ‘원칙’에 따른 분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생의 감정의 흐름, 자신과의 관계의 쌍방적 ‘원리’에 의해서 순리로 풀어야 해결된다. 엄마도 관계적 ‘원리’에 입각해서 형과 소통해야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아빠도 마찬가지다. 형제들간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만을 강요해서 분쟁을 근본 해결할 수 없다. 옛 조상들도 윤리나 관혼상제 등 예식의 방식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다투는 진짜 이유는 지적하는 쟁점에 있지 않고, 다른 숨은 의도가 많았다. 조선조에서 숙종이 돌아가셨을 때, 왕의 계모가 상복을 1년만 입어야 한다는 설과 3년을 입어야 한다는 설로 갈려서 논쟁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진짜 이유는 집권한 서인과 야당들의 권력다툼이었다. 이로 시작된 극렬한 당파 싸움이 망국의 길로 가는 단초가 되었다. 이런 문제는 원칙으로 풀 수 없다. 원리로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화를 잘 내기도 하고, 잘 참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우리의 홧병(Hwa byung)이라는 단어가 등재되고,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등재해 특유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감성이 더 강한 사회이다. 최근에는 자살과 우발적 범죄가 늘고, 분노조절장애라든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갑질 논란과 적폐청산이라는 사회적 갈등이 들불처럼 휩쓸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원칙을 만들 때, 권력의 힘보다는 원리에 따라야 한다. 어릴 때부터 ‘원리’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화를 초기단계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발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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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책임의 인식이 미래를 연다

칼럼 2018.08.23 18:19 Posted by 사랑 태평짱


 

 차량이 밀리는 네거리에서 꼬리물기는 불법이다. 한 쪽의 불편을 전체의 불편으로 확대하는 죄악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거의 일상사가 되고 있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따라 들어간다. 심리를 분석해 보면, 나는 앞 차를 따라 갈 뿐이고, 그 사이에 신호가 바뀌면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요인이라는 핑계가 자리 잡고 있다. 남의 탓, 책임 전가이고, 상황논리이다. 그러나 차량정지 금지구역에 정차하는 것은 분명 자기 책임이다. 사전에 그런 사태를  스스로 예상해야 하고, 위반하면 자기 잘못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잠시 후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현실에만 집착하여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거나 과실을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중교통 이용시 이제는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노약자석이 따로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심지어 젊은이들이 노약자석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사회심리가 급격히 변화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아마도 미안한 순간을 조금 피하면 내가 편하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리라. 지금 내가 편한 것이 중요하고, 지금 내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 먼저다. 잠시의 배려로 내가 손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이제는 사회가 용납을 한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다. 내 이익을 조금 양보해서 더 높은 가치와 사회적 윤리에 만족하는 공동체적 기쁨은 약해졌다. 

  
남의 탓을 하고 현실 이익에 안주하는 현상은 정부정책에서도 다르지 않다. 요즈음 심각한 청년실업의 원인은 많다. 최근에 이런 사태가 가중된 주요 원인은 정부가 취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이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의 저성장 저고용 기조의 지속, 인구구조의 변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을 거론하며 사회구조의 변화에 이유를 두는 듯하다. 즉, 실업의 주요 원인이 정부정책 이외의 외부환경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청년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중소기업은 사람 구하는 것이 어렵고, 외국인 근로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실업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청년들은 대기업을 원하고, 수도권에 머무르고 싶고, 더 좋고 편한 직장을 원한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들도 외부환경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청년들의 심정을 위로하기 바쁘다. “너희들의 불행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각박한 세상 탓이야. 너희들의 아픔을 안아줄게.”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그런 말을 하는 강사들이 인기를 끈다. 그러나 청년들이 자기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게 되고, 외부 환경을 원망하는 분노가 커진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이다. 청년들에게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패기가 있어야 하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미래의 눈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들과 정책당국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도 실망스럽다.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선진국들도 그런 추세였고, 경제활동 인구가 줄고 있어서 당연하다는 논리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더 선진국이면서도 성장률이 더 높은 나라들이 많다. 상황논리에 빠질 일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도 남의 탓, 상황논리에 빠지면 안 된다. 내 탓, 자기책임이 일정 부분 분명히 있다. 오히려 만델라의 방식처럼 내 탓을 인식하는 회개와 화해의 과정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얼마 전 한 병사가 군 사격장에서 유탄에 맞아 숨졌다. 사건을 수사해서 원인을 밝히려는 군 당국에 숨진 병사의 아버지가 수사를 하지 말라고 건의했다. 수사결과 가해 병사가 밝혀지면, 그 병사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또 그 병사의 부모도 한이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존경스럽다. 현실만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지는 것이다. 현실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미래로 간다. 사회에 대한 자기책임의 인식이 현실에서 배려와 양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풍족한 미래를 열고,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다. 

(선진사회만들기연대 2018.08.2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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