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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편지88 - 향나무

새벽을 여는 편지 2010.08.18 18:35 Posted by 태평짱


향나무가 되리라

나는 한 그루 향나무가 되리라
구불거리며 더디 자라도 좋아라
한 시절 피는 꽃에만 향기를 담는
그런 나무는 되지 않으리라

깊은 향내 온 몸에 녹아들어
줄기가 되고 뿌리가 되어서
사철 온 산에 은은한 향기로
스며나리라

그러다가 쪼개지고
그리고 태워지면
더 진한 향기를 뿜고

그래서 재가 되어도
마냥 향기를 풍기는
그런 한 그루 향나무가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장태평입니다.


‘향나무가 되리라...’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지은 시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요즘 이 시가 괜스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나는 과연 내가 걸어온 길에서 온 산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향나무였는지...
아님 한 시절 피는 꽃에 불과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됩니다.

작년 7월이었지요? 충남 사이버농업인 경진대회에서의 일입니다.
농업인들이 저에게 지게를 지게 하면서 ‘우리 농업을 지는’ 의미라 했습니다.
또 북을 치게 하면서 ‘우리 농업과 농업인의 발전을 위해 북을 울리라’는 의미라 했지요...

그때가 부임 후 1년. 현안을 챙기고 농어업의 변화를 꾀하고자 정말 앞만 보고 달리던 때였습니다. 산적한 과제들이 너무 많아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던 시기였지요...
정말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들은 지게와 북의 의미는 저 자신을 차근차근 돌아보게 했습니다.
숨 가쁘게 달리고 있지만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내가 옳다고 하는 이 길이 우리 농어업과 농어업인의 궁극적인 발전을 위한 것인지...

그렇게 고민하고 되짚어보면서 또 1년을 달려왔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농어업의 진정한 향나무였는지 돌아봅니다.
더디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향기를 품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구불거리며 은은한 향기를 품으려고 합니다.
진한 향기를 위해서라면 쪼개지고 태워져도 개의치 않으렵니다.
우리 농어업과 농어업인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재도 되렵니다.
자유인 장태평은 이렇게 향나무로 새 출발을 하려 합니다.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를 주셨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이메일을 통해, 그리고 이 편지의 회신을 통해서도요...
넘치는 사랑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보내오셨습니다. 모자람이 많은 글을 이렇게도 아껴주시니...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계속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 뭐가 좋을까...

제 티스토리 블로그 새벽정담(http://taepyong.tistory.com)이 어떻겠습니까?
새벽정담에 새벽을 여는 편지 코너가 마련돼 있습니다.
다음 편지부터는 거기에 제 마음을 올려놓겠습니다.
들러서 좋은 이야기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0년 8월 17일
장태평 드림


안녕하십니까. 장태평입니다.

장관으로 부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고,
이젠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를 묵묵히 지원해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점,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2년이란 세월을 돌아보면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주말 현장방문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을 선물했습니다. 예산의 청년농업인들, 양평의 이장님, 제주도의 2세 농업인과 어업인, 충주의 체험연구회 분들, 해남의 사이버농업인들...
한 분 한 분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이분들의 농어업에 대한 열정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일상에 지친 저를 위로하는 산들바람이었습니다.
다들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캐낸 가장 귀한 보물이라면 우리 농어업의 잠재적 가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했지요.
겉으로는 보이지 않던 보물들이 속 깊숙이 들어가 보니 너무나 많더군요.
예순일곱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신 순천의 곶감 어르신. 세계 최고의 곶감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공부하십니다.
쉰이 넘어 대학에 진학해 조경학 공부를 시작한 분도 계십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온 몸으로 헤쳐 나간 이분은 그런 자신을 정말 사랑한답니다.

여름지기님... 고구마농사의 한계를 쌀빵으로 풀려다 어려움에 부딪혔지요. 눈물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신답니다.
한 때는 농사꾼이란 직업이 부끄러웠다는 예산의 청년. 이를 이겨내고 이젠 연간 1억원을 버는 당당한 CEO가 됐습니다.
이분들이 우리 농어업의 잠재적 가치이고,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2년 전 저는 정말 어려운 시기에 장관으로 왔습니다.
미국 쇠고기와 관련된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지요...
그 후에도 멜라민, 쌀직불금 부당지급, 농협비리 등 묵었던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습니다. 우리 농어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싸늘해졌습니다.

그래도 우린 합심해서 일련의 사태들을 무난하게 해결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더 강해지는 발판으로 삼았지요...

지난번 강원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쌈채소를 재배하는 청년이 하는 말이 원산지 표시제로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어 너무 고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 쇠고기 사태라는 어려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결과입니다. 국민들의 신뢰도 되찾았습니다.

혼자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 기억하시지요?
우리 농어업인과 정부가 함께 해서 거둔 결실들이 많습니다.

요원할 것만 같았던 농수협개혁을 포함해 농어업선진화가 거대한 물결을 탔습니다. 식품산업과 생명산업이라는 농어업의 미래산업이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지원제도와 금융지원제도 등 농어업을 강하게 만들 인프라도 구축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농어업인들이 힘을 더하고 현장의 아이디어를 보태주셔서 가능했습니다.

미진한 점도 많습니다. 씨만 뿌린 것도 있고,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지들이 훌륭하신 후임 장관님과 합심해서 잘 키워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지난 3월말 우리 농식품부에 있어서는 안 될 불행이 찾아왔지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내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우리 직원들을 많은 농어업인들이 감싸주고 함께 아파해주셨습니다.

당시 우리부엔 이 세상 누구의 위로보다도 농어업인들의 따뜻한 시선이 힘이 됐습니다.

직원들을 대표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농식품부에 보여준 그때 그 믿음과 사랑을 앞으로도 계속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돌이켜보니 온통 감사할 일뿐입니다.
그동안 제가 받았던 넘치는 사랑을 우리 농어업에, 농어촌에 돌려줄 수 있길 바랍니다. 때로는 옆에서, 때로는 뒤에서 힘을 보태고 응원하겠습니다.
뜻하시는 모든 것, 꿈꾸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0년 8월 10일
장태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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