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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 방역체계 확 바꿔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이 심각하다. 2000만 마리 이상 살처분했다. 마트에서 달걀 판매를 제한하고, 가격도 계속 오른다. 달걀을 재료로 쓰는 제빵·제과업체도 타격이 예상되며, 닭고기 소비가 줄고 있다. 경제적 피해도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3년마다 되풀이되는 AI와 구제역에 재정 손실이 막대하다. 2003년 12월 시작한 AI로 1531억원, 2006년 11월 시작 AI로 582억원, 2008년 4월 시작 AI로 3070억원, 2010년 11월 시작 구제역으로 2조7383억원 피해가 발생했다.
 
가축방역의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첫째, 신속하고 과감한 초기대응이 필요하다. 2014년 1월 시작된 AI는 감염된 농가에서 새끼오리 17만 마리를 전국으로 분양한 후에 설이 겹치면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올해도 초기대응이 미흡했다. 올해 AI는 전파속도가 극히 빠른 유형이라는데 평상적인 방역으로 임한 듯하다. 첫 발견 후 닷새 만에야 관계부처 회의가 열렸다. 단계별 조치도 선제적이지 못했다. 일본은 최초 발생 확인 2시간 만에 총리실에 대책반을 만들고 총리실 주도 대응 체제를 가동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2000만 마리를 살처분했지만, 일본은 78만 마리에 그치고 있다.

둘째, 방역에 임하는 태도가 철저해야 한다. 방역은 전쟁이다. 대충 해서는 백전백패다. 1차적 방역 책임자는 농가다. 원칙대로 철저하게 소독하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모든 방역수칙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 아직도 외부인과 외부 차량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방역복을 입지 않고 소독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설비가 노후하고, 농장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허다하다. 감염된 것을 알면서도 닭과 달걀을 출하한 뒤 발생 신고를 한 농가도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방역기간에 토종닭의 유통을 허용했다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셋째, 축사 운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사육환경은 질병 발생의 최대 원인이다. 외국에 비해 밀집도가 높은데 상한선을 정하고, 시설기준, 소독·관리기준, 정기교육 등 매뉴얼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계열기업의 방역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넷째, 과학적 대응이 필요하다. 올해 H5N6형 AI는 과거 유형보다 감염 속도가 빠르고 조류에 치명적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에 맞는 특별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발생지역의 일정 반경 내에서 무조건적 살처분을 하는 방식과 방역대역 기준도 위험도를 감안해 개선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경우 발생한 농가만 살처분하고 3㎞ 지역 내에서는 철저한 이동제한 조치를 한다. 우리는 감염되지 않은 농가까지 살처분해 비용이 막대하고, 대응인력도 부족하여 정작 감염농가의 살처분이 즉시 시행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친다. 매년 되풀이되는 AI는 사실 한국에 토착화한 징후가 있다. 2014년 전 세계에 큰 피해를 입혔던 H5N8형 바이러스의 시작점이 한국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는 과거 통념에 따른 대응으로부터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중점 관리지역을 정해 예찰을 강화하고 통계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신속한 알림시스템도 필요하다. 

다섯째, 백신을 검토해야 한다. 구제역은 백신을 통해 대형 피해를 줄였다. 매년 되풀이되는 AI의 경우에도 살처분하는 현재 방식은 한계가 있다. 말뿐인 AI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보다 당분간 막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백신 접종 조치가 필요하다. 여섯째, 방역 컨트롤타워를 정비해 범정부적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상시예찰과 예방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제공조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