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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엄마 아버지 하나가 되세요

********** 50년 만에 만나 멋쩍어 하는 부모사이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딸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의 애원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1.

엄마!
돌아서서 아버지를 보아주세요
4일 후엔 다시 보지 못한답니다
50년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실낱같던 희망을 보세요
세월이 무참히 누비고 간 얼굴이지만
헤어지던 날의 고운 조각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엄마!
엄마의 헤라클레스를 만져 보세요
폭삭 잿더미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아버지!
엄마는 토라진 것이 아니랍니다
굳어 가던 차가운 망부석
온기가 돌아오려면
한나절은 걸릴 거예요
아니 하루쯤 더 필요할지도 모르죠

엄마가 스스로 달구어지기에는 힘이 부쳐요
엄마의 처녀 시절 아버지가 첫손을 잡고
첫 입술을 맞추던 때
아버지의 이글거리던 정열이 있었지요
엄마와 헤어지던 날
쏟지 못했던 눈물이 있었지요

아버지!
벙어리된 엄마 마음을 열어주세요
얇은 회한의 막을 걷으면
곱게 간직했던 사랑의 노른자위
두껍게 차 있을 거예요

2.

하나님!
긴 밤이 필요합니다
어두움은 말고요

우리 엄마 아버지에게
다시 기회를 주세요
가슴이 아플 때, 마음이 외로울 때
당신을 찾았던 두 사람에게
헤어지던 날 거두어 가신 열정을 되돌려주세요

아!
되돌림이 없으신 하나님!
그러면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인생의 끝물에서 잔정은 휘발되고
깊은 정만 남아 있으므로
욕심은 사라지고 운명에 순종하는 두 사람이므로
그래도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반드시 마지막 정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들의 마음을 쇳물처럼 녹여 주세요
수월하게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해주실 수만 있다면
이들의 기억에서 내일을 거두어가 주세요
오늘만 계속되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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