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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리와 원칙

아이들이 싸우면, 엄마는 무조건 야단을 친다. 동생에겐 “형 말 잘 들어야지.”하고, 형에겐 “동생을 늘 구박만 하냐. 이웃 집 애들은 서로 잘 위해 주더라.” 한다. 그런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형은 엄마에게 대든다. “저 애가 잘못 했는데, 왜 엄마는 늘 동생편만 들어요?” 심지어는 “왜 엄마는 나만 미워해요?” 한다. 옆방에 있던 아빠가 개입한다. “아니 이 녀석이!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엄마한테도 화살을 돌린다. “애들을 어떻게 교육하길래 맨날 이렇게 싸워?” 이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엄마도 없다. “아니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이제 애들 싸움은 부부싸움으로 확전된다. 이런 싸움의 사례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본다. 동생, 형, 엄마,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당시의 상황만이 원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이미 간직하고 있던 감정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형은 동생이 늘 자기를 무시하고, 형이 생각하는 규칙을 어기면서 행동하는 동생에게 평소 불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때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이유다. 동생의 마음속에도 평소 형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동생도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기대의 기준들을 갖고 있다. 그 기준들은 원칙과 같은 것이다. 상대가 이 원칙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때, 불만이 쌓이고 어느 단계에서 화를 내게 된다. ‘화’라는 분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으나, 자기에 대한 모멸이나 좌절을 느낄 때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런 감정의 발로가 상대적으로 자신을 밝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왜냐면, 원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도 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 자연의 원리나 세상사의 원리와 같다. 원리는 근본이 되는 이치다. 이치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을 뜻한다. 사물과 존재의 근거, 사유와 인식의 근거, 행위와 규범의 근거가 되는 이치다. 일은 결국 이 원리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원리는 자연적인 것이고, 종교에서는 신의 영역이라 하겠다. 우리가 이와 유사하게 쓰는 말에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원칙은 현실에서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말한다. 원칙은 이 글에서는 원리와 더 명확히 구별하기 위하여 현실이나 이론체계에서 ‘사람’이 정하는 것으로 한다.
형의 감정은 동생은 이래야 한다는 자신의 일방적 ‘원칙’에 따른 분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생의 감정의 흐름, 자신과의 관계의 쌍방적 ‘원리’에 의해서 순리로 풀어야 해결된다. 엄마도 관계적 ‘원리’에 입각해서 형과 소통해야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아빠도 마찬가지다. 형제들간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만을 강요해서 분쟁을 근본 해결할 수 없다. 옛 조상들도 윤리나 관혼상제 등 예식의 방식을 가지고 다투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다투는 진짜 이유는 지적하는 쟁점에 있지 않고, 다른 숨은 의도가 많았다. 조선조에서 숙종이 돌아가셨을 때, 왕의 계모가 상복을 1년만 입어야 한다는 설과 3년을 입어야 한다는 설로 갈려서 논쟁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진짜 이유는 집권한 서인과 야당들의 권력다툼이었다. 이로 시작된 극렬한 당파 싸움이 망국의 길로 가는 단초가 되었다. 이런 문제는 원칙으로 풀 수 없다. 원리로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화를 잘 내기도 하고, 잘 참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우리의 홧병(Hwa byung)이라는 단어가 등재되고,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등재해 특유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감성이 더 강한 사회이다. 최근에는 자살과 우발적 범죄가 늘고, 분노조절장애라든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갑질 논란과 적폐청산이라는 사회적 갈등이 들불처럼 휩쓸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원칙을 만들 때, 권력의 힘보다는 원리에 따라야 한다. 어릴 때부터 ‘원리’에 입각한 교육을 하고, 화를 초기단계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가 발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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