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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겨울에도 자라는 나무

겨울에도 자라는 나무

사랑하는 K에게,

지난번 갑작스레 큰 어려움이 다가온 자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었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고 그것이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그 침묵은 자네에게 무관심으로 이해되는 것 같아 또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네.
나는 속으로 힘없는 넋두리만 했었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일어나고, 나쁜 일도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네. 불행하게도 자네에게는 짧은 기간에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쳐 왔었지. 당사자인 자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자네의 그 큰 아픔을 덜어 줄 수 있는 묘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했을 뿐이었네. 이제 다소 늦었지만 사랑하는 자네에게 조그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하네.

겨울산을 생각해 보게. 푸르름이 없어 삭막하기만 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듯 하지.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히 살아 숨쉬는 생명이 있네. 나무 가지는 얼음같이 차가운 모습으로 굳어 있지만, 바로 그 속에는 생명이 흐르고 있네. 봄이 되면 그 가지에서는 새싹이 돋아 나오고, 넓은 잎과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걸세. 지금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분주한 삶이 그 앙상함 속에 흐르고 있음을 우리 눈이 보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봄이 왔을 때, 파릇파릇한 새싹을 보고서야 생명을 인식하네.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말일세. 그러나 그 생명은 새로운 생명이 아니네. 단지 잠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났을 뿐이네.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살아 있었지. 살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서 어두운 땅 속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네. 우리는 땅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질긴 생명이 죽지 않고 언제나처럼 살아 있었다는 것뿐이 아닐까 하네.

그러나, 나이테를 보면 우리는 놀라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네. 생명이 유지만 된 것이 아니라 자라기까지 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네. 나이테는 여름에 자란 부분과 겨울에 자란 부분이 있지 않은가. 겨울에 자란 부분은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비록 작지만 더욱 단단하고 더욱 또렷하네. 마치 고생하며 자란 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말일세. 그래! 자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하네.
잎이 떨어진 나무는 겨울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얼어붙은 땅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사실은 열심히 자란 것이네. 얼어 있는 땅 속에서 물을 빨아올리고, 삭풍 속에서 양분을 만들어 낸 것이네. 바로 그것이네. “겨울에도 자라는 나무!” 내가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네. 자네도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겨울에도 자라는 나무처럼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이네.

나무가 겨울을 거치면서 자라는 것처럼 우리도 어려움을 거치면서 자라네. 어떤 어려움이던 우리가 그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보다 작은 어려움은 우리에게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며,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일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도 더 이상 두렵지 않네.

나는 어린 시절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겨울에 자란 부분을 나무의 뼈라고 생각했네. 그 혹독한 겨울에 자란 부분이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뼈라고 생각해 보게. 정말 그럴 듯 하지 않은가. 이제 자네도 이 뼈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네. 우리 인생을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지탱하여 줄 「참뼈」 말일세.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려움은 계속해서 오네. 하지만 그것은 나무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것은 연약한 우리에게는 분명 시련의 기간이네. 그러나 우리에게 시련의 기간은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스러운 순환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 고난을 거치면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네. 사실은 그러한 모든 시련이나 어려움이 나무에게는 자라는 과정이고, 우리에게는 삶의 과정이 아닌가 하네.

대장장이가 단단한 쇠를 만들기 위해 무쇠를 달구기도 하고, 물에 넣기도 하고, 수없이 때리기도 하네. 쇠는 그러한 시련을 거쳐 단단해지고 강해지네. 그러는 과정에서 쇠는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겪네. 우리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프지 않는 경우가 있겠는가.
지금의 자네를 생각하면, 불 속의 무쇠가 아닐까 생각하네. 그러나 나는 믿고 있네. 지금 불 속에 있는 자네는 낙망 속에서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네. 자네는 곧 단단한 쇠가 되고, 그래서 반짝이는 보검이 될 걸세. 자네는 꿈이 있네. 우리 인간은 희망을 간직하고 살고 있네. 그래서 어려움도 시련도 모두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지난번 어려움에 부닥친 자네를 보면서 나는 자네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네. 자네는 마지막 벼랑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네. 그리고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았네. 자네는 그 때 겨울나무였네.
그 어려움이 그 병마가 자네의 몸을 점점 더 어둡게 가리어도, 자네의 꿈이 더욱 밝게 빛나서 그 어두움을 밝히고, 끝내는 그 어두움마저 거두어버릴 것을 굳게 믿네. 그래서 가끔은 작은 어려움에도 좌절하는 우리에게 강한 힘을 주고, 자네처럼 희망에 살 수 있도록 해주게.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자네!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더욱 당당한 자네의 모습을 보게되기를 기도하겠네.

*** 병마에 시달리는 환우 여러분의 쾌유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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